복사기에서 막 나온 종이는 아직 따뜻했다. 은재는 그 온기를 손바닥으로 누르듯 붙잡고, 같은 이름 옆에 다른 손글씨가 번갈아 찍힌 걸 오래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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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02:12, 편의점 복사기 앞.
은재는 전날 받은 등기 서류를 다시 복사기에 올렸다.
도성시설관리(주)
하단 도장은 붉은색이 조금 번져 있었고, 서명은 검은색 볼펜으로 눌러 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서명란 이름은 윤상복.
이름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문제는 손끝이 기억하는 느낌이었다. 이 획은 어딘가에서 이미 봤다.
은재는 계산대 아래 보관함을 꺼냈다. 이사 첫해 받았던 체납 안내문, 계약 갱신 확인서, 상가 공용부 수리 안내문. 노랗게 바랜 종이 셋을 바닥에 나란히 펼쳤다.
세 장 모두 회사명은 비슷했다. 도장 위치도 비슷했다.
그런데 서명은 전부 다르게 생겼다.
같은 이름인데, 손이 셋이었다.
은재는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서류 네 장을 한 프레임에 넣고 찍은 뒤 확대했다. 윤의 첫 획 올라가는 각도부터 달랐다.
“…이건 아니지.”
작게 중얼거린 말이 혼자 있는 가게 안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02:48, 경비실.
도현은 이번 달 야간점검표를 순서대로 펼쳐 놓고 있었다.
- 2/07 / 확인자: 윤상복
- 2/14 / 확인자: 윤상복
- 2/21 / 확인자: 윤상복
이름은 같았다. 하지만 도현 눈에는 먼저 리듬이 보였다.
2/07 서명은 시작점이 깊게 눌려 있었다. 2/14는 붓처럼 가볍게 흘렀다. 2/21은 끝획이 중간에서 끊겼다.
한 사람이 급하게 쓴 글씨와도 달랐다. 급하면 흔들리지만, 습관은 남는다. 여기엔 습관 자체가 세 개였다.
무전기가 짧게 울렸다.
“로비 전기함 정기 점검 요청 들어왔습니다. 03:10 예정.”
도현은 모니터 시계를 먼저 봤다. 아직 02:48.
정기점검이면 전날 통보가 있어야 했다. 근무 시작 전에 관리실 문서함에도 확인 공문이 없었다.
“발행번호 전달받았나요?”
“없습니다. 현장 확인 요청만.”
도현은 점검표 위에 메모를 붙였다.
문서번호 없는 야간점검 = 보류
03:06, 편의점 출입문.
자동문이 열리자 찬 공기가 먼저 들어왔다. 회색 작업복 남자가 서류철을 들고 섰다. 명찰은 가슴에서 살짝 비틀려 있었다.
“서은재 씨 맞죠? 정기점검 확인 도장만 받으면 됩니다. 1분이면 끝나요.”
남자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류를 내밀었다. 맨 위 페이지는 익숙한 양식처럼 보였고, 서명란엔 이미 윤상복이 적혀 있었다.
은재는 유리문 안쪽에서 서류만 봤다.
“발행번호가 없네요.”
“야간은 원래 이렇게 진행해요. 바쁘시잖아요.”
말투는 친절했지만, 손은 계속 안쪽으로 서류를 밀었다. 사인펜 끝이 서명란 위에서 흔들렸다.
그때 도현이 사이에 들어왔다.
“관리실 내선 연결부터 하겠습니다. 실근무자 확인 후에 진행하죠.”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도현을 봤다.
“경비님, 절차를 그렇게 빡빡하게 하면 다 늦습니다.”
“늦는 건 괜찮습니다. 틀리는 건 안 됩니다.”
도현은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관리실 연결. 확인자 윤상복 현재 근무 여부 조회.”
짧은 침묵 뒤, 남자의 손목 힘이 풀렸다. 서류철 모서리가 살짝 내려갔다.
“다음에 다시 오죠.”
남자가 돌아서는 순간, 철제 파일 사이에서 A4 한 장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는 줍지 않고 그대로 자동문을 나갔다.
도현이 장갑 낀 손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상단 로고는 도성FM, 하단 도장은 도성시설관리(주), 서명은 또 윤상복.
그리고 우측 상단에 작은 체크박스가 있었다.
퇴직자 명단 확인
체크는 되어 있었다.
03:42, 경비실.
관리실 회신이 돌아왔다.
“윤상복 기사요? 작년 11월에 퇴직했습니다. 지금 근무자 아닙니다.”
도현은 통화 내용을 스피커로 틀어 은재에게도 들려줬다. 은재는 서류 가장자리를 세게 쥐었다가 힘을 뺐다.
“그럼 방금 사람은 누구였어요?”
“이름을 빌린 사람이죠.”
은재가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말했다.
“제 보증금 문자도, 어젯밤 골목도, 전부 같은 쪽이네요?”
도현은 대답 대신 화이트보드에 세 줄을 썼다.
- 동일 회사명 반복
- 확인자 이름 고정(
윤상복) - 필체 불일치(최소 3종)
그리고 은재 쪽으로 보드를 돌렸다.
“이제 이름 말고 흐름을 봐야 합니다. 누가 언제, 어떤 서류로, 어떤 문을 열려고 했는지.”
은재는 잠깐 망설이다가 자기 휴대폰 메모를 열어 도현에게 보여줬다. 지난 2주간 받은 문자 캡처가 줄줄이 있었다.
오늘만 오시면 정리됩니다.
도장만 확인하세요.
뒤문으로 잠깐.
문장들은 다 달랐지만, 끝은 늘 같았다.
오늘만
도현이 말했다.
“오늘만이라는 말은, 내일 확인하면 들통난다는 뜻입니다.”
은재는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버티면, 우리가 이기는 거네요.”
“버티는 게 아니라 기록하는 겁니다.”
도현은 파일에 새 라벨을 붙였다.
필체 불일치 / 접근 시도 / 03:06
05:01, 로비 전기함 앞.
동편 CCTV가 또 1초 꺼졌다 켜졌다.
복구된 프레임에서 전기함 문틈에 흰 봉투 하나가 끼어 있었다. 누가 일부러 반쯤 보이게 넣어 둔 모양이었다.
도현이 봉투를 꺼내자, 검은 펜 네 글자가 보였다.
퇴직자 명단
은재는 자동문 안쪽에서 그 글자를 읽고 천천히 숨을 삼켰다.
“저 명단에… 제 이름도 있으면요?”
도현은 봉투를 바로 열지 않았다.
“있든 없든, 오늘은 우리가 먼저 읽습니다.”
다음화 예고
봉투 속 명단에서 같은 이름이 여러 번 지워진 흔적이 나오고, 도현은 ‘현재 근무자’라는 말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확인한다.
※ 제작 고지: 이 에피소드는 생성형 AI 보조 도구를 활용해 작성되었고, 공개 전 편집 검수를 거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