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를 여는 소리는 늘 작다. 그런데 어떤 새벽에는 그 작은 소리가, 문 하나가 닫히는 소리처럼 들린다.
06
05:07, 편의점 창고 앞.
도현은 장갑 낀 손으로 봉투 입구를 열었다. 은재는 계산대 불을 절반만 켠 채 옆에서 서류가 나오는 걸 지켜봤다.
안에는 열한 줄짜리 명단 한 장과, 얇은 탄소복사본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명단 제목은 야간 협력인력 변동 내역.
세 줄이 검은 펜으로 두껍게 지워져 있었다.
윤상복 / 시설야간 / 2025-11-30 / 박정우
박정우 / 시설주간 / 2025-12-12 / 공란
김태윤 / 외주점검 / 2026-01-08 / 공란
지운 자국 밑으로 글자 압흔이 살아 있었다. 빠르게 덧칠한 사람의 힘이 그대로 남은 선이었다.
은재가 물었다.
“퇴직이면 끝난 거잖아요. 왜 지워요?”
도현은 명단 하단을 가리켰다.
배포처: 로비·상가 야간 협력업체
“끝났으면 배포본에서 이름이 사라져야 해요. 그런데 여기선 지운 흔적만 남겼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원래 있던 이름’처럼 보이게 둔 거예요.”
은재는 명단 끝을 누르듯 잡았다.
“문 열게 만들려고.”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열쇠가 아니라 핑계였죠.”
05:19, 경비실.
도현은 관리실 당직 번호로 다시 연결했다. 이번에는 통화 녹음을 켠 상태였다.
“윤상복 기사님 현직 여부 재확인 부탁드립니다.”
“현직 아닙니다. 퇴직 처리 완료.”
“박정우 기사님은요?”
잠깐 키보드 소리가 났다.
“해당 기간 인수인계 등록이 없습니다.”
도현은 펜을 멈췄다.
“등록 자체가 없다고요?”
“네. 대장상 공란입니다.”
전화가 끝난 뒤, 도현은 화이트보드에 굵게 적었다.
- 퇴직자 이름이 현장 서명으로 재사용됨
- 인수인계자(
박정우)는 대장상 공란 - 문서번호 없는 야간점검 반복
은재는 보드를 보다가 낮게 말했다.
“사람이 없는데 서명은 있고, 절차는 없는데 점검은 있고…”
“그래서 오늘부터 순서를 바꿉니다.”
도현은 A4 안내문을 새로 출력해 유리문에 붙였다.
야간 점검 접수 기준
1) 관리실 공문 원본
2) 발행번호 대조
3) 실근무자 내선 확인
하나라도 누락 시 출입 보류
은재가 문구 끝을 손톱으로 눌러 평평하게 붙였다.
“이번엔 제가 먼저 말할게요. 문 안 열어요, 라고.”
05:41, 로비 자동문.
회색 작업복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명찰을 정면으로 달고 있었다.
박정우
남자는 어젯밤보다 훨씬 차분한 얼굴로 서류철을 들어 보였다.
“공문 가져왔습니다. 확인만 하시죠.”
도현은 유리문 안쪽에서 말했다.
“문서번호 불러주세요.”
남자는 첫 장을 넘겼다. 번호 칸은 빈칸이었다.
“야간 긴급 건이라 생략됐습니다.”
은재가 도현보다 먼저 대답했다.
“생략은 관리실에서 합니다. 우리는 확인만 해요.”
남자는 은재를 똑바로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서은재 씨, 오늘 처리 안 되면 임대차 분쟁 더 커집니다. 손해 보세요?”
그 말에 은재 손등이 순간 굳었다. 하지만 비상벨 손잡이를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제 손해는 제가 확인합니다. 문서는 번호부터.”
도현이 무전기를 눌렀다.
“관리실 내선 연결. 현장 신원 확인 요청.”
남자는 짧게 웃지도 않은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오늘은 다들 예민하네.”
돌아서는 순간, 동편 CCTV가 다시 1초 끊겼다.
복구된 화면에서 남자의 명찰이 뒤집혀 있었다.
우정박
은재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이름도 못 지키는 사람이 절차를 지킨다고요?”
남자는 답하지 않고 출입문 밖으로 사라졌다.
06:03, 편의점 앞 바닥.
자동문 레일 틈에서 종이 한 장이 접힌 채 끼어 있었다. 은재가 집어 들자, 오래된 복사 흔적이 보였다.
임대차계약 특약사항(사본)
상단 주소는 은재가 지금 사는 옥탑방과 같았다. 하단 특약란에는 누군가 볼펜으로 문장을 덧써 넣어 놓았다.
야간 시설점검 요청 시 임차인은 출입 협조한다.
글씨체는 아까 서명란에서 본 윤상복 획과 닮아 있었다.
은재는 종이를 접지 않고 그대로 도현에게 건넸다.
“내 계약서까지 건드렸네요.”
도현은 특약 문장 끝을 검지로 짚었다.
“그쪽은 문을 열 명분을 만들고, 우리는 명분을 지우는 중입니다.”
은재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일은 저도 같이 관리실 갈게요. 원본 대장 직접 볼래요.”
“좋아요. 아침 9시,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처음으로 은재가 먼저 시간을 정했고, 도현이 바로 맞췄다.
새벽이 거의 끝나갈 즈음, 둘은 봉투와 사본을 같은 파일에 넣고 라벨을 붙였다.
지워진 이름 / 원본 대조 필요
다음화 예고
관리실 원본 대장에서 박정우 인수인계란이 통째로 비어 있는 이유가 드러나고, 은재는 자신의 계약서에 같은 필체가 반복된 날짜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 제작 고지: 이 에피소드는 생성형 AI 보조 도구를 활용해 작성되었고, 공개 전 편집 검수를 거쳤습니다.